바흐: 토카타와 푸가 D단조 BWV 565
웅장하고도 섬뜩하기까지한 도입부 덕분에 세간에는 '오페라의 유령 테마'로 더 잘 알려진 곡. 하지만 잘 녹음된 음원으로 눈을 감고 들으면, 천장이 높은 고딕 양식 예배당 한가운데 앉아 있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유튜브에는 톤 코프만. 칼 리히터, 심지어는 알버트 슈바이처의 녹음 등이 있어 들어보았다.
연주자마다, 그리고 연주한 오르간마다 각각 다른 느낌을 준다. 연주자마다 해석의 차이가 있고, 같은 연주자라고 해도 녹음마다 느낌이 다르기도 하며, 오르간의 차이는 다른 여느 악기보다도 다른 느낌을 준다. 저음의 소리가 오르간마다 다른 것 같다.
알버트 슈바이처, 1935년 런던 녹음
가장 오래된 녹음인 알버트 슈바이처의 녹음은 누군가가 축음기판을(LP판이 아니라 12인치 축음기판임!) 비디오로 찍어 올렸는데, 축음기 바늘 소리가 정겹다. 하지만 낮은 음질 때문에 현장감은 느끼기 힘들었다. 기교가 없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템포로 정직하게 한음 한음 연주하는 것이 슈바이처의 곧은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녹음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이 녹음을 선호하는 사람도 적지 않게 있는 모양이다. 멋부리지 않고 바흐의 선율을 뚝심있게 거의 일정한 템포로 밀고 나가지만 크레센도와 디크레센도가 어우러져 지루하지 않았다.
칼 리히터, 1960년대로 추정
가장 인기가 높은 녹음인 듯 싶다. 낡은 오르간과 대비되는 칼 리히터의 번쩍거리는 에나멜 구두가 좀 언발란스하지만 오르간 소리도 훌륭하고 연주도 훌륭하다. 하지만 유튜브라서 그런건지, 다소 오래된 녹음이라 그런지 음질은 별로... 여담이지만 우습게도 유튜브 댓글에 칼 리히터의 연주가 틀렸다는 지적이 올라왔고 이에 크게 반발하는 댓글이 달려 댓글이 5천개가 넘었다. 하지만 연주자마다 해석의 차이일뿐, 딱히 칼 리히터가 틀린 부분이 있지 않다는 의견이 대세. 개중 한국인으로 보이는 댓글도 보임.
톤 코프만, 1995년 함부르크 성 야코비 교회 녹음
최근(?) 녹음이라 그런지 음질이 좋다. 오르간은 북부 유럽 최대 규모의 바로크양식 오르간. 이 오르간의 사연은 기구하다. 최고의 오르간 장인인 알프 슈니트거가 무려 1693년에 제작한 이 오르간은, 1차 세계대전 때에는 전면 파이프를 전쟁물자로 뺐겼다. 게다가 2차대전 때에는 교회가 폭격을 맞아 오르간이 망가져 성한 곳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이 기구한 사연에는 BWV 565의 작곡가 바흐도 얽혀 있다. 1720년에 바흐는 성 야코비 교회 오르간의 상임 연주자로 지원했지만, 교회에 돈을 못내서 탈락하고 만다. 그 자리는 4천 마르크를 헌납한 호아킴 하이트만이 꿰차게 된다. 그로부터 수세기가 지나, 바로 그 오르간으로 바흐의 곡이 연주되고 있다. 한편 알버트 슈바이처도 이 오르간과 관계가 있다. 그는 1차 대전의 고초를 겪은 이 오르간에 대한 보고서를 써서(1928년), 전면 파이프 보강 등이 이루어진다. 톤 코프만의 연주는 다소 템포가 빠른 편이라, '이렇게 경박하게 빠른 연주는 바흐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댓글도 보인다. 하지만 톤 코프만의 연주는 경박하다기 보다는 신들린듯하다는 표현이 맞아 보인다. 그의 연주는 점잔하지는 않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천상으로 올려보내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의 1995년 연주는 더 날카롭고 위압적이지만, 1983년 암스테르담 녹음(도이치 그라마폰, 필자 소장)은 이에 반해 부드러운 느낌이다. 그의 해석이 달라진 것일까, 아니면 오르간의 차이 때문일까.
오르간 참고 : http://www.arpschnitger.nl/shamb.html
자베르 바르누스, 부다페스트 Kőbánya 장로교회
http://www.facebook.com/xaver.varnus.1/info
어쩌면 가장 최근 녹음인 듯. 웅장함은 덜하지만 현대적인 오르간으로 톤 코프만보다 2분 30초 가량 더 천천히 연주한다. 느린 연주를 원하는 사람들의 호평이 많다. 페이스북 계정까지 있는 64년생 신세대(?) 연주자. 하지만 연주가 느리다고 좋아하기만 하긴 이르다!
고트프리드 프렐러, 바흐의 삶과 작품 중에서(영화)
그의 연주도 무척이나 훌륭하고, 오르간도 훌륭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 아이 둘이 송풍부를 작동시키기 위해 풀무를 돌리는 장면이 눈에 띈다. 지금은 전기 장치로 돌리지만 19세기까지는 인력을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장치가 고장나 교회의 덕망있는 어른이 남 몰래 풀무를 돌렸다는 미담이 종종 내려온다. 그리고 연주가 끝나면, 풀무에서 내려와 숨을 몰아쉬는 두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이밖에도 훌륭한 오르간 연주들이 유튜브에 많이 올라와 있다.
그밖에 들어볼만한, 오르간이 아닌 악기로 연주한 곡들 감상.
채프먼스틱
로버트 쿨버트슨, 유튜브, 2009년
난생 처음보는 악기. 플랫을 눌러 연주하는 12현 악기라고 하는데, 생긴 뽄새와는 다르게 하프시코드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파지조차 어려워보이는 악기로 토카타와 푸가를 너무나 훌륭하게 연주하여 보는 내내 입이 떡 벌어진다. 울림통이 커보이지도 않는데, 꽤나 장엄한 음색에 경건한 마음마저 든다. 당신이 진정 구루이십니다.
오케스트라
앤드류 리튼 지휘, 영국 로얄 오케스트라, 2010년 BBC 프롬
레오폴드 스토우스키가 오케스트레이션한 곡이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바흐의 원곡을 연주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웅장함과 잘 어울리는 편. 무려 하프 두대까지.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하면서, 원곡이 가지고 있던 종교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근대적으로 변한 느낌마저 든다.
유/리/잔/!!!!!!!
로버트 티소, 유튜브, 2009년
세상에... 물을 담은 연주용 유리잔 수십개를 놓고 토카타와 푸가를 연주하다니! 낮은 음은 마치 팬플루트와 비슷하고, 높은 음은 실로폰 소리 같다. 신기하기만 한게 아니라, 연주 자체로써도 훌륭하다. 다만 다이나믹스가 부족하다는게 흠. 연주가 끝나고 기립박수를 쳤다.
바이올린
앤드류 맨즈, 유튜브, 2009년
솔로 바이올린.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바이올린의 짙은 호소력에 바흐의 선율이 나름대로 잘 어울린다. 하지만 댓글에는 조를 A로 낮춰보라거나, 비올라 연주를 듣고 싶다는 등의 반응. 첼로 연주는 없을까나? 한편 바네사 메이의 연주를 피해 감상하러 온 사람들이 많다.
관악 콰르텟
왕립 관악 콰르텟, 2011년
제1트럼펫, 제2트럼펫, 트럼본, 프렌치호른, 튜바 총 5인이 연주한다. 제1트럼펫, 제2트럼펫 연주자가 음역대를 소화하기 위해서인지 트럼펫 을 번갈아가며 다른걸 쓰는 것이 눈길을 끈다. 본래 오르간곡이라서 그런지, 비록 음색은 조금 다르지만 가장 오르간 연주와 흡사한 느낌. 관악 콰르텟을 현악 콰르텟보다 접하기 힘든건 어쩌면 이처럼 관악 콰르텟에 어울리는 대중적인 곡이 별로 없기 때문일지도...
류트
에딘 카라마조프, 2009년
http://youtu.be/AFPDWzay0wE - 토카타
http://youtu.be/MBr5-m-AkHQ - 푸가
류트가 갖는 여행자의 느낌 때문인지, 연주자의 성이 까라마조프라서인지, 연주자의 해석 때문인지, 바흐의 선율이 집시의 것이 되었지만 이것대로 또 듣는 맛이 있다. 물론 류트 연주를 보는 재미도.
통기타
캘리포니아 기타 트리오, 2008년
기타 연주는 꽤 여러 곡이 있지만, 트레몰로 주법으로 원곡의 느낌을 최대한 살린 점이 이 연주의 특징. 오르간이 건반을 누르고 있으면 무한정 음이 지속되는 악기인 반면 통기타는 현을 계속 퉁겨야만 하는 점을 커버하면서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연주가 앵콜을 부르게 한다.
일렉기타
요나스 레프버트, 2011년
앞서 통기타가 현을 계속 퉁겨야 해서 어색한 감이 있다고 했는데, 반면 일렉기타는 음도 지속되고 이펙터를 이용해서 오르간이 스톱을 이용하는 것처럼 음색도 바꿀 수 있으니 정말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악기가 아닌가 싶다... 이 연주자는 오르간 연주와 자신의 연주를 합쳐놓았는데, 전혀 어색하지가 않고 오히려 전율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내려간다.
레드넵, 2008년
이사람은 자신의 기타 연주를 따로 녹음해서 합쳤고, 이펙터로 오르간 음색과 다름없는 소리마저 냈다!
여담으로, 천재 폴 길버트는 속주가 두손가락으로 이렇게 쉽다면서 이 곡을... http://youtu.be/qSlcHPdialI
아코디언
캠벨 베트리지, 2006년
드디어 손 위의 오르간, 아코디언이 등장했다! 녹음 장소의 울림이 작아서 그렇지, 이 아코디언으로 반향이 좋은 곳에서 연주했다면 오르간 못지 않았을 것이다. 명동성당에서 동방정교회 수사들의 성가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나중에는 민속음악 공연을 하며 아코디언연주를 했었는데 파이프 오르간이 부럽지 않았다. 오르간을 제외한 악기들 중에서는 신디사이저와 이펙트를 이용한 전자기타를 제외하면 가장 오르간과 흡사하지 않을까 싶다. 이 동영상은 간직해 뒀다가 조금씩 조금씩 연습해봐야지. 평생의 과제로 삼아 보자. 이렇게 풍부한 음색에 다이나믹스까지 완벽한 휴대용 악기는 없어요!
이반노 바티슨, 플로렌스 성당, 2005년
그리고 결국, 성당에서 연주한걸 찾아냈습니다. 이게 오르간이냐 아코디언이냐! 오오오!
풍금(하모니언)
16플루트, 유튜브, 2010년
오오! 드디어 국민학교의 추억 풍금 등장. 그러고보니 풍금은 리드악기. 풍금은 오르간이었다. 음색이 너무 멋지다.
피아노
아르템 야신스키, 2012년
부소니가 편곡한 피아노 솔로. 토카타에서는 오르간의 음 지속을 모방하기 위해 페달을 쓰는데, 스톱을 사용하여 음색에 변화를 주는 오르간과는 달리 피아노는 단일 음색이라서 그런가 불협화음이라는 느낌이 크지, 오르간과 같은 웅장함과 충격은 없었다. 하지만 멜로디가 반복되는 푸가는 오히려 원래 피아노를 위한 곡이었던 것마냥 근대적이고 세련되게 다가왔다. 기타와 마찬가지로 여러 연주자들의 곡이 있지만, 이 연주자 것이 가장 들을만 했다.
거대 발 피아노
장난감 가게 직원 둘, 2009년
어릴때 봤던 영화에 소원을 빌어 어른의 몸이 된 아이가 장난감 회사 중역 되는 스토리가 있는데, 장난감 가게에서 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정도면 거의 티비쇼 진기명기 수준이 아닌가? 아니 요즘은 스타킹인가...
여기까지는 감상해볼만한 연주들이었지만 아래는 병맛 연주. 링크 클릭을 권하지 않습니다.
존 스콧 휘틀리, 2009년
BBC에서 진지하게 만들었다. 처음에 올가니스트가 오르간을 연주하러 올라가는 장면까지 촬영. 하지만 댓글은 닥치고 연주부터 하라는게 베스트... 심지어 영국 오르간 소리가 개 구리다느니, 유럽 키워들이 자기나라 오르간이 최고라며 키배를 뜨고 있다. 근데 확실히 저음이 괴상망칙하다. 1997년에 만든 신(新)-고전 오르간 이라는데 이거 뭐 이래...
자베르 바르누스, 부다페스트 왕립 예술원 2009년
위의 느린 연주에 대호평을 받은 그 자베르 바르누스가 맞다! 느리긴 엄청 느린데, 이게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오르간 연주만 있는게 낫다는 평이 줄이으며 바흐가 무덤에서 통곡한다는 댓글마저 있다(한국인이 아닐까 의심스럽긴 하다).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가 세미 클래식이 되어 버렸다! 재즈 드럼과 베이스라니, 김치에 칵테일도 아니고 이게 뭐란 말인가... 세미클래식스럽게 살렸다면 모르겠는데, 클래식 채널과 재즈 채널을 틱틱 돌리는 듯한 느낌이 좀 애매하다.
바네사 메이, 1집(?)
아... 나의 바흐가.. 나의 바흐가... 바흐의 선율이... 작은 가슴이... 김광석이.... ㅠㅠ 이건 아니잖아요. 들으면 들을수록 가관이다... 심지어 이 곡을 유튜브에 업로드한 사람조차 자신은 바네사 메이 음반이 없다고 버젓이 디스를 하고 있다. 이 곡에 비하면 위 자베르 바르누스의 곡은 양반이다...
색소폰 합주
국립 색소폰 합주단, 2009년
크고작은 색소폰 수십대가 나오지만 위 관악 콰르텟만 못한 것 같다. 색소폰의 한계인가, 이상한 편곡 때문인가...